가장 창의적이지만, 스스로를 믿지 않는 아이들
1. 문제제기
지난해(2024) 6월 발표된 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2022 결과1)는 한국 교육계에 신선한 충격과 깊은 과제를 동시에 던져주었다. 평가의 혁신영역인 '창의적 사고력(Creative Thinking)'에서 한국 학생들이 전 세계 최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한국 교육은 주입식 암기 위주이기 때문에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오랜 사회적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과였다. 당시 결과가 나오자마자 우리 정부는 물론, 관련 단체까지 모두 이 성적표를 일제히 공개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탁월성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내면의 심리적 지표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높은 성취도와 대비되는 낮은 자아효능감, 즉 '성취와 믿음의 괴리'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본 브리프는 우리 정부의 자화자찬식 보도 이면에 가려진 한국 학생들의 '창의적 역량의 두 얼굴'을 분석하고, AI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경쟁력은 무엇인지 고찰하고자 한다.
Table. 1 국가별 창의력 점수 순위 [1]
2. 보여주고 싶은 성적표
2024년 당시 정부는 한국 학생들의 창의력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발표의 골자는 "우리 대한민국 학생의 창의력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문구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신뢰할만한 국제기구인 OECD의 데이터가 증명했다. 의심할 여지 없었다. 당시 발표에 의하면 한국 학생들은 창의력 점수 60점 만점 기준에 평균 38점을 획득했고, 전체 점수로 보자면 OECD 평균인 33점을 크게 상회하여 전체 64개 참여국 중 싱가포르에 이어 다음 순위를 기록했다. 전반적인 지표로 보면 OECD 회원국 중에서는 3순위 이내를 기록했다. 특정 영역에만 국한된 결과도 아니다. 학생들은 텍스트를 활용한 표현, 시각적 디자인, 사회적 문제 해결 등 평가의 모든 하위 영역에서 고른 성과를 보였다. 또한, 교육 형평성 지표도 좋았다. 부모의 직업, 교육 수준, 자산 등을 포함한 경제·사회·문화적 배경(ESCS)2)이 창의적 사고력 점수에 미치는 영향력은 6.4%로 낮게 나타났다. OECD 평균인 11.6%의 절반 수준이었다. 즉,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은 가정 환경의 유불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창의적 잠재력을 평등하게 길러내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적어도 '능력'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한국 학생들은 미래를 위해 이미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3. 감추어진 성적표
당시 정부의 발표에서는 상대적으로 축소되거나 깊이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즉,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수 있는 '성취의 역설'이 드러난 것이다. 객관적인 창의성 점수는 최상위권이었다. 그러나, "나는 창의적인 활동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창의적 자아효능감(Creative Self-efficacy)' 지수가 OECD 평균(0)보다 낮은 마이너스(-)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창의력 점수에서는 멕시코, 칠레 등 보다 높았으나, 자아효능감에서는 그들 나라보다 뒤쳐진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성취와 태도의 디커플링‘ 현상은 우리 학생들이 창의성 조차도 놀이나 도전이 아닌, '평가받아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은 우리 학생들을 스스로 재검열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높은 역량이 있음에도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수동적 우등생'을 양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지난 PISA의 창의력 결과 직전의 수학 평가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즉, '고성취-저흥미'의 패턴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글로벌 1위"라는 숫자에 취해있는 동안, 우리 학생들 내면의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증명된 것이다.
4. 결론 및 제언
다시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1년이 지난 지금 당시 발표된 내용을 보자면 이 결과는 한국 교육에 뼈아픈 메시지를 던진다. 앞다투어 점수가 높게 나왔다고 홍보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정부,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 학생들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믿고 발휘할 수 있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교실 내에 ‘엉뚱한 생각’이 항상 수용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평가의 대상이 아닌 창의력은 그 자체로서 상시 발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둘째, 결과에 대한 피드백도 있어야겠으나, 시도 자체를 격력하는 교육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새로운 생각에 대한 인정이 학생들의 자아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 이 문제는 비단 교실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과학자의 연구활동 전반에도 형성되어야 하는 지향점이다. 마지막으로, 객관식 상대평가인 현재의 수능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의 수능 제도야말로 창의성의 핵심인 발산적 사고와 자아효능감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억압하고 있다. 향후 대한민국 교육의 과제는 창의성 조차 점수화하여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탁월함을 믿게 만드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노벨과학포럼 정책연구그룹]
Table. 2 창의적 효능감과 학생 성향의 정합 국가 3)
(주)
1) OECD PISA 창의력 관련 보고서(Vol. Ⅲ)는 당초 2021년에 발표되었어야 하나, 코로나로 인한 1차 연기 및 채점 난이도로 인한 2차 연기로 2024년 6월에서야 발표된 바 있으며, OECD는 향후 ‘디지털 세상에서의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평가하고 2026년에 그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2) Index of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Status
3)창의력 15위 이내 국가 중 자아효능감이 비교적 높고 동 지수와 상상력·모험심과의 간극이 작은 순위로 재정렬하여 표현한 것. 즉, 창의력이 높고 그것을 지지할만한 심리적 안정감도 가지고 있으며, 해당 간극차이가 적어 ‘성취와 태도가 균형잡힌 가장 이상적인 창의력-효능감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1] OECD(2024), "PISA 2022 Result, Creative Minds, Creative Schools" Vol.3
[2] Bandura, A.(1997). 『Self-efficacy: The exercise of control』 W H Freeman/Times Books/ Henry Holt & Co.
[3] Tierney & Farmer(2011). “Creative self-efficacy development and creative performance over time.”
[4] Tierney & Farmer(2002). “Creative Self-Efficacy: Its Potential Antecedents and Relationship to Creative Performance.”
Disclaimer 이 보고서에 기재된 내용은 연구진의 개인적인 분석 및 의견이며, 한국노벨과학포럼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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